 |
|
 |
|
|
..
사슴 대가리를 고아야 할 일이 있었다. 물컹한 보자기를 풀어 헤치자 대가리만 남은 사슴의 부릅 뜬 눈과 회백색 짧은 털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벌레들이 보였다. 무.조.건.고.아.야.해.는 실로 난감스런 주문이었다. 곤욕스럽고 구역질이 났다. 하루 낮 밤을 꼬박 역겨운 냄새와 싸워 이기고 나서야 허연 이빨만 남은 해골을 보았다. 뼈만 남은 사슴 대가리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넣는게 죽기보다 싫었다. 잘 고아진 국물만큼이나 곰솥과 마주 앉았던 반나절이 전쟁이었다. 미안하다, 사랑한다는 말을 그 땐 몰랐다.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지 미안하면서 사랑할 일은 아니었다. 사슴 대가리를 건져 땅 속에 묻기까지 사흘 밤 낮이 걸렸다.
오늘, 열 아홉 예쁜 소녀가 첫 데이트를 나갔다. 몇 날 몇 일을 공 들이고 설레다가 겨우 나갔다. 잠을 설치고, 애를 태우고, 떨고, 두려워하면서 겨우 나갔다. 수선화 한 잎 자락 같은 너를 불안한 세상 위에 놓아 둔 것이 미안할 때가 있다. 애타고 설레는 마음, 오래 잃지 않기를. 이 바램, 오늘 비가 이리 온다 아가야.
.
|
|
|
| |
|
 |
|
 | |

'
by 어깨너머
|
|
▒ 카테고리 ▒
 skin by 흐니
|
|